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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꾸미가 찾은 보물선’에서 나온 청자···서해바다 보물, 첫 서울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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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유물이 땅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바닷속 해저, 갯벌, 강과 호수 속에도 있다. 인류가 이미 선사시대부터 배를 이용했으니 당연하다. 3면이 바다인 한반도는 특히 해저 유물이 많을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수있다. 신석기~청동기시대에 걸쳐 새겨진 ‘반구대 암각화’(국보)에는 배를 탄 사람들이 고래잡이를 하고 있다.
실제 선박 유물도 있다. 경남 창녕 비봉리 조개무지(패총) 저습지에서 발굴된 소나무의 통나무 배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발굴된 가장 오래된 배로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에서 8000년 전후로 나타난 신석기시대 배다. 김해 황성동 유적에서는 가야시대의 선박 부재들이, 경주 월지(옛 안압지)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안압지선’이 나왔다.
고려시대에는 서해와 남해를 중심으로 바닷길이 더욱 활짝 열렸다. 강진·부안에서 만든 청자를 비롯해 지방 특산물들을 가득 실은 배들이 개경으로 향했고, 중국 신안선 등 무역선들도 오고갔다. 국내외 해상활동이 더 활발해진 조선시대에도 세금으로 거둬들인 곡식(세곡)과 궁중에 상납하게 한 특산물(공물)을 운송하는 조운선 등이 바닷길을 누볐다.
태안을 비롯한 서해는 중국·일본을 잇는 바닷길이자 국제 문화교류의 현장이다. 그동안 통일신라시대~조선시대의 고선박과 유물들이 많이 발굴됐다.
침몰한 선박이나 수몰된 고대 도시·건물 유적 등 수중 유적·유물을 조사·연구하는 게 수중고고학이다. 육지 발굴과 달리 특별한 장비, 기술도 필수적이다. 최근 수중 탐사기술이 발전하면서 수중고고학, 해양 문화유산의 중요성과 가치는 크게 높아지고 있다.
수중 발굴 등 수중고고학과 해양 문화유산 전반을 살펴보고 이해를 높일 수있는 흥미로운 기획전이 마련됐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전남 목포시)가 한성백제박물관(서울 송파구)과 공동 개최하는 ‘바닷길에서 찾은 보물’ 전이다.
23일 한성백제박물관에서 개막하는 기획전은 주요 수중발굴 유물들을 통해 한국 수중고고학의 역사와 발전 현황, 수중발굴 과정, 세계 각국의 사례, 나아가 해양 문화유산과 수중고고학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자리다. 기획전에는 ‘바다의 경주’라 불릴 정도로 고선박, 유물들이 발굴된 충남 태안군의 마도해역과 대섬에서 나온 고려청자와 조선시대 유물, 백제시대 토기·기와 등 80여 점이 선보인다.
동아시아 해상교역의 중심 항로인 서해와 태안 지역의 역사적 의미, 백제의 해상활동도 살펴본다. 김지연 한성백제박물관장은 태안 지역에서 수중 발굴한 ‘태안선’과 ‘마도 1·2·4호선’에서 나온 특별한 유물들, 또 마도 해역에서 확인한 백제시기 토기·기와도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처음 공개된다며 서울에서 최초로 수중고고학을 소개하는 자리라고 밝혔다.
한국 최초의 바닷속 수중 발굴조사는 전남 신안에서 벌어진 중국 원나라 무역선 ‘신안선’이다. 1323년 중국을 떠나 일본으로 가던 신안선에서는 1976~1984년까지 이뤄진 조사에서 청자와 동전 등 14세기 한국·중국·일본의 국제 교역상황을 보여주는 유물 2만7000여점이 나왔다. 이후 수중 유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수중고고학의 기반이 마련됐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수중 발굴조사된 고선박은 모두 15척, 유물은 10만 점이 넘는다. 고려시대 배가 11척으로 가장 많고, 통일신라와 조선시대 선박이 각 1척이다. 나머지 2척은 중국 배인 ‘신안선’과 ‘진도선’이다.
수중발굴로 확인되는 고선박은 흔히 ‘보물선’ ‘바닷속 타임캡슐’이라 불린다. 급작스레 침몰한 난파선이라 안타깝기는 하지만 당시 배에 실린 유물들은 마치 타임캡슐처럼 당대의 역사와 생활문화상 연구에 소중한 자료들이어서다.
‘주꾸미가 찾은 보물선’으로 유명한 ‘태안선’은 2007년 태안군 대섬 앞바다에서 한 어민이 청자를 안고 있는 주꾸미를 건져 올리면서 알려졌다. 조사결과 2만5000여점의 청자를 실은 12세기 청자운반선으로 확인됐다. 태안선에서는 보물로 지정된 ‘청자 퇴화문 두꺼비모양 벼루’와 2점의 ‘청자 사자형뚜껑 향로’ 등 빼어난 조형미의 청자들이 나왔다.
두꺼비모양 벼루는 지금까지 확인된 유일한 형태의 벼루이며, 머리와 몸통·다리는 물론 울퉁불퉁한 피부를 검은색·흰색 안료의 점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자모양의 뚜껑을 한 청자 향로 2점은 서로 크기와 모양이 비슷하다. 큰 머리와 날카로운 이빨, 매서운 눈초리의 사자는 해학미까지 엿보인다. 발굴에 참여한 잠수사가 향로 뚜껑 1개를 도굴해 뒤늦게 원래 모습을 찾은 사연도 있다. 태안선에서는 발송처·수신처를 알려주는 목간(글씨를 적은 나무조각), 고려시대 많은 생활용품도 나와 주목을 받았다.
태안 마도 해역에서 발굴된 ‘마도2호선’은 전라도에서 거둬들인 곡물을 싣고 개경으로 향하다 난파된 고려 배다. 국화와 모란·버드나무·갈대·대나무 무늬를 상감하고 나비와 물새까지 그려 서정적 물가 풍경을 담아낸 ‘청자 상감국화모란유로죽문 매병 및 죽찰’, 연꽃줄기를 음각으로 표현한 ‘청자 음각연화절지문 매병 및 죽찰’은 배에서 발견돼 각각 보물로 지정됐다.
매병들과 함께 나온 죽찰(글을 적은 대나무 조각)들은 매병의 제작 시기는 물론 매병이 고려시대에 술 만이 아니라 참기름이나 꿀 같은 고급 식자재도 보관했다는 사실을 알 수있게 한다.
‘마도1호선’은 곡물을 실어나르던 고려 배다. 1207~8년 사이 해남·장흥·나주 등에서 벼와 메밀·조·콩 다양한 곡식은 물론 각종 젓갈을 싣고 개경으로 가던 길에 좌초돼 지방 물품들이 중앙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설명해준다.
‘마도4호선’은 2015년 발굴된 현존 유일한 조선 선박이다. 15세기 초 나주에서 한양 광흥창까지 세곡·공물을 싣고 가다 침몰했다. 배에서 나온 많은 물품표는 조선 초기 조운제도 연구에 중요한 자료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김성배 소장은 지금까지 수중 발굴조사에서 태안 앞바다에서만 ‘태안선’을 시작으로 고려·조선시대의 ‘마도 1~4호선’ 등 5척의 고선박과 약 3만여 점의 다양한 유물이 나왔다며 이번 기획전을 통해 수중고고학과 해양 문화유산에도 큰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전시회에는 또 최근 태안 마도 해역에서 수중 발굴된 기와 조각, 취사용 토기인 바리 조각 10여 점도 처음 선보인다. 이들 유물은 제작기법 등으로 볼 때 웅진(공주), 사비(부여) 시기보다 이른 한성시기(기원전 18~기원후 475년) 유물로 추정된다. 이들 유물이 마도 해역에 남겨진 경위 등은 더 조사가 필요하다. 전시는 5월 19일까지.
서울교통공사가 노조 활동을 이유로 근로시간 면제제도(타임오프)를 악용했다며 노조 간부 34명에게 중징계를 내렸다. 노조 측은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공사 측은 지난해 10월부터 타임오프 사용자 311명의 전수 조사를 토대로 이 같이 결정했다고 19일 밝혔다. 타임오프는 근무 외 노조 활동을 유급 근로시간으로 인정하는 제도다.
앞서 서울시 감사위원회는 지난해 6월부터 투자·출연기관 타임오프제 운용 현황을 조사해 면제 한도 인원(지난해 기준 32명)을 초과한 311명이 이를 사용했다고 공사 측에 통보했다.
이에 공사 측은 허가받지 않은 상태에서 근무 시간에 지정된 근무지로 출근하지 않은 187명을 대상으로 1차 조사를 벌였다. 이어 지난해 말부터 이달 15일까지 다섯 차례 상벌위원회를 열고, 34명의 징계 수위를 확정했다.
공사 관계자는 원래 타임오프 사용자 기준을 ‘연 단위’로 적용해야 하는데 공사에서는 노사 합의로 그간 ‘일 단위’로 정했다. 시간 단위로 사용한 노조 관계자들이 적발된 것이라며 실제 사전에 신고한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근무에서 빠진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공사 측에 따르면 징계 대상자는 2022년 9월29일~2023년 9월30일 정상 출근일 137일 중 134일을 지정된 근무지에 출근하지 않은 직원, 같은 기간 정상 출근일 141일 중 138일을 지정된 근무지에 출근하지 않은 직원 등이다. 무단 결근일이 151일에 달한 경우도 있었다.
공사는 20명에게 파면, 14명은 해임 처분을 내렸다. 파면은 가장 수위가 높은 징계다. 퇴직급여 등이 50% 감액되며 5년간 공직 등 취업이 제한된다. 해임은 파면 다음 수준의 징계로, 퇴직급여 등은 지급되나 3년간 공직 등 취업이 제한된다.
지난해 정년퇴직자 중 한 명은 퇴직을 앞두고 해임 징계를 받기도 했다.
징계 대상자에 대한 급여 환수도 추진한다. 환수금액은 총 9억원으로, 1인 평균 2600여만원에 달한다. 징계 대상자는 처분일 기준 15일 이내에 재심을 청구하고, 처분이 확정되면 3개월 이내에 지방노동위원회 구제를 신청할 수 있다고 공사는 전했다.
공사 관계자는 아직 타임오프 사용자를 추가로 조사하고 있어서 징계 대상자가 늘어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이에 서울교통공사통합노동조합(통합노조) 관계자는 그간 행동은 노사합의에 따른 것이고, 합의가 잘못됐다면 합의 내용을 고치면 될 일이지 갑자기 사측에서 중징계를 내리는 것은 과도하다며 일부의 일탈을 전체의 문제로 해석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노동 탄압을 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앞서 서울시는 본청뿐 아니라 산하 공공기관의 직원에 대한 평가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온정주의 조직문화를 없애 이른바 ‘오피스 빌런’을 퇴출시키겠는 취지다. 이에 지난해 사문화됐던 최하위 근무성적 평정제를 다시 도입했고, 처음으로 ‘가 평정’ 대상자를 확정했다.
수(20%)·우(40%)·양(30%)·가(10%) 등 등급별로 직원을 나눈 뒤 ‘가’ 대상자는 교육을 통해 개선되면 보직에 복귀시킨다. 그러나 교육 후 개선이 되지 않거나 교육을 받지 않으면 직권면직도 검토한다.
1517년 10월31일, 독일 동부 비텐베르크 대학 교회 정문에 ‘면죄부의 능력과 효용성에 관한 토론’이라는 글이 붙었다. 비텐베르크 대학 신학 교수인 마르틴 루터가 로마 가톨릭 교황의 면죄부 남발에 항의해 쓴 95개조의 반박문이었다. 이 글은 금속활자로 인쇄돼 삽시간에 유럽 전역에 퍼져나갔다. 종교개혁의 시작이었다.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은 대자보가 역사를 바꾼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자신의 견해나 주장을 종이에 써 벽에 붙인 것을 뜻하는 대자보는 조선시대에는 벽에 건다고 해서 괘서, 벽서로 불렸다. 주로 동네 어귀나 저잣거리, 성문, 포구 등 인적이 많은 곳에 붙였다. 왕의 실정을 탄핵하거나 탐관오리의 수탈을 고발한 익명의 괘서는 종종 사화로 이어졌다.
지금 쓰는 대자보라는 말은 중국에서 유래했다. 문화대혁명의 도화선이 된 것도 대자보다. 1966년 5월25일 베이징대 캠퍼스에 베이징대학 당 위원회와 베이징시 당 위원회 간부를 비판하는 대자보가 붙었고, 당시 실권파로 불렸던 국가주석 류사오치에 대한 마오쩌둥의 공격이 본격화했다.
한국 대자보의 전성기는 1980~1990년대였다. 하얀색 전지에 유성 매직으로 꾹꾹 눌러쓴 대자보가 대학 여기저기에 나붙었다. 대개 정치·사회 문제를 논평하거나 투쟁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대자보는 언론자유의 확대, 대학의 탈정치화, 인터넷의 발달로 예전의 힘을 잃었지만 아직도 이따금씩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얻곤 한다. 2010년 고려대생 김예슬씨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대자보, 2013년 한 고려대생의 ‘하 수상한 시절에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가 대표적인 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인 고 유연주씨의 언니 유정씨(27)가 21일 동생을 잃은 서울 이태원 골목 초입에서 대자보를 썼다. 이태원참사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22일에는 해병대 예비역 대학생이 경북대에서, 예비 초등교사가 서이초 인근에서, 23일에는 전세사기 피해자가 화곡역 인근에서 대자보를 쓴다고 한다. 대자보는 언로가 막힌 시대의 언로였다. 이들의 대자보도 ‘입틀막’하는 정부의 태도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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